효령
행사 일정

기양서원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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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43년(영조 19, 계해)에 대군의 위패(位牌)가 과천 대군 묘하에 신축한 현 청권사로 이안(移安)하게 되니 56년간 대군의 영혼이 머무시던 함창(咸昌) 사당은 이때부터 비이게 되었다.

   사람이 살던 집도 여러해를 비우게 되면 보기가 흉하거늘, 하물며 신위가 모셔져 있던 사당이 60년 동안 비어 있었으니 그 형상은 가히 상상할 만하다. 그 동안 영남의 선비들은 그 사당을 가리키며 “우리 동방의 태백․우중(泰伯虞仲)이신 효령대군의 영혼이 머무시던 곳 이었다”라고 못내 아쉬워 하면서 이를 양녕․효령 두 대군의 위패를 뫼시는 서원(書院)으로 승격하자는 운동이 영남 일대에 확산되었다. 본래 영남은 추로지향(鄒魯之鄕:맹자와 공자의 고향이라는 뜻)으로 일컫는 숭문․숭덕(崇文崇德) 사상이 높은 고장이였기에 이러한 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 성스러운 일이 순조롭게 이룩되어 1810년(순조 10, 경오)에 드디어 비어있던 대군의 사당을 개축, 양녕․효령 두 대군의 위패를 봉안하고 기양서원(岐陽書院)이라 이름하니, 이로써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던 태백과 우중 두 대군의 덕이 사림(士林)들에 의해 추앙을 받게된 것이다.

   이 기양서원의 상향축(常享祝)은 이조판서 한만유(吏曹判書 韓晩裕)와 예조참판 홍의호(禮曹參判 洪義浩)가 지었고 이미 청권집유에 실리어 있다. 또 기양서원에 사액(賜額)을 청하는 소(疏)를 나라에 올린 바 있었으나 윤허(允許)되지 않았다.

   이 기양서원이 훼철(毁撤:헐어내어 걷어버림)된 내력에 대하여는 전해오는 기록이 희미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미루어 생각컨대, 훼철  된 시기는 고종말엽이며 훼철된 원인은 모름지기 운영난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로서 대군의 사판이 과천 사당으로 이안(移安)된 후 부터는 함창의 옛 사당은 이미 버려진 바나 다름이 없었고 또한 제사를 받들고 사당의 수호를 목적으로 마련했던 위토도 이미 그 목적이 상실된 것이니 그 위토는 수 십 년 동안에 누가 어떠한 원인으로든 처분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기양서원은 당초 건물만 있었을 뿐 수호 관리에 충당할 기본재산이 없는 상태에서 6, 70년동안을 지방의 사림(士林)들에 의해 힘겨운 운영을 해 오다가 급기야는 훼철할 수 밖에 없는 비탄(悲歎)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 기양서원(岐陽書院)을 창건할 때 영남의 함창․상주․안동․순흥․예천․영주․봉화 등지의 서원과 향교에서 성원하는 통문이 줄을 이었다. 그 가운데 순흥 소수(紹修) 향교 단계(丹溪) 서원 통문을 옮겨 싣는다.

순흥 소수(順興紹修)①:향교(鄕校)․단계서원(丹溪書院)

   고소(姑蘇)와 진릉(晋陵)의 사당은 태백(泰伯)과 우중(虞仲)의 영광만이 아니요, 주가(周家)의 성(盛)함입니다. 지덕(至德)과 청권(淸權)의 사당은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의 미덕만이 아니요, 국조(國朝)의 빛이 옵니다. 우리 성조(世宗大王)께서 덕을 쌓으시고 어짐을 쌓으심은 기주(岐周)② 팔백년의 기업(基業)과 같은 경로(經路)요, 당시의 두공자(公子)께서 덕 있는 아우에게 손위(遜位)하신 것도 태백․우중(泰伯․虞仲)과 이처럼 서로 같사온데, 지덕(至德)과 청권(淸權)의 받듬을 어찌 봉사손에게만 맡겨 두고, 고소(姑蘇)③ 진릉(晋陵)과 같은 예(禮)를 오늘날에 다시 가다듬지 못하겠습니까. 또 하물며 병진연교(丙辰筵敎:영조 12, 5. 25)에 효령대군 사당을 영남에 세우도록 권면(勸勉)하셨으니, 이것은 자못 공검호반(恭儉湖畔)과 한 굽이를 우리 공자(公子)에게 주신 조칙(詔勅)으로서, 이제 이 토구(菟裘:은거하는 곳)는 터를 옮겼으나 영묘(靈妙)한 빛은 홀로 남아 있습니다. 인하여 그 옛 사당에다가 다시 새 의전을 베풀어서 바로 고소․진릉(姑蘇․晋陵)과 같이 아름답게 하고 빛을 가지런하게 하시면 행심(幸甚)이로소이다.

註 ① 소수서원(紹修書院):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중종(中宗) 38년(1543)에 풍기 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창립, 명종(明宗) 5년(1550)에 최초로 이 서원에 사액(賜額)하였는데 고려중엽 안향(安珦)을 배향하였음

② 기주(岐周):주(周)나라가 처음에 기산(岐山) 아래서 나라를 세움으로서 기주(岐周)라 이름. 지금의 중국 협서성 기산현(陜西省岐山縣)

③ 고소(姑蘇):중국 강소성 소주시(江蘇省 蘇州市) 근교에 있는 오현(吳縣)의 옛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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