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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유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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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북한) 고성군 서면 백천교리 금강산에 있는 사찰.

고려 때 민지(閔漬)가 쓴 《금강산유점사사적기》에 따르면 서기 4년(신라 유리왕 23년)에 세워졌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왕실의 도움을 받아 여러 차례 중건하였다. 고려 때는 1168년과 1213년, 1284년 세 차례 중건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408년(태종 8) 효령대군께서 부왕으로 부터 하사받아 백금 2만냥을 들여 3천 칸으로 중건한 것을 비롯하여, 1453년(단종1) 6월 화재로 소실된 것을 신 의(信義)ㆍ성료(性了)등의 대선사가 효령대군께 고하여 다시 수천 칸을 중건했다.

그리고, 1469년(예종1) 대종 주조시에 쓴 찬성(贊成) 정란종의 기문에 효령대군께서 도제조로 참여하신 기록이 있다. 이후 1595년ㆍ1636년ㆍ1703년ㆍ1759년ㆍ1882년 등 여러차례 중건하였다.

유점사는 외금강 효운동 계곡 입구 용천을 앞에 두고 청룡산을 등지고 세운 금강산 4대 사찰 중에서도 가장 크고 웅장한 금강산 제일의 대찰이었다. 강원도 안에 60여개의 말사 사암을 거느리는 우리나라 31대 본산 사찰 중의 하나였다. 또, 이 절에는 오탁수(烏啄水)라는 샘물이 있는데, 까마귀가 쪼는 곳을 팠더니 샘물이 솟았다는 유점사 창건 설화에 나오는 그 샘이 있다.

6. 25 전쟁시기에 완전히 소실되었지만 일제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유점사의 장려함은 극에 달했다. 20여 동에 이르 는 건물들과 함께, 작은 모양의 금동불 53기, 세조대왕이 하사한 것이라는 앵무배와 호박잔, 지공대사가 인도에서 가지고 와 만 들었다는 패엽경, 인조대비의 사경(寫經), 신라 남해왕이 하사했다고 전해지는 향로와 비취옥배, 고려말 나옹선사의 가사 장삼 등 수많은 보물들이 있었다.

특히, 국보급 문화재였던 53불상과 불상을 모신 능인전을 비롯하여, 수월당과 연화사ㆍ제일선원ㆍ반룡당ㆍ의화당ㆍ서래각 등 모두 6전 3당 3루가 있었다. 우리나라 중세 건물 중에서 가장 높고 화려한 건물로 꼽혔던 능인전과 가장 큰 건물로 만일회와 같은 법회를 자주 열었던 연화사 등의 손실이 아쉽다.

지금은 조선 세조때 조성된 13층 청석탑과 후일 묘향산 보현사로 옮겨진 동종(銅鐘) 그리고 빈 절터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자료: 신증 동국여지승람 제45권, 퇴계당 전집 <유점사 본말사지,유점사 사적기>,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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