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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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권사 발행 책자 소개 – 송교유고(松郊遺稿)

송교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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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자는 효령대군 7대손(선계:서원군-고림군-장제부정)으로 조선시대 문신이자 학자인 송교공 미목(李楘)께서 쓰신 것으로 (제문·진향문·기우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송교공(松郊公) 이목(李楘) 행적

[생졸 : 1572(선조5)~1646(인조24)]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문백(文伯), 호는 송교(松郊). 아버지는 사옹원봉사 신성(愼誠)이다. 성혼·김장생(金長生)에게 수학했다.




1603(선조 36)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들어갔다. 1608년 북인에 의해 관직을 추탈당한 성혼의 신원을 상소했다. 1611(광해군 3) 정인홍(鄭仁弘)회퇴변척소 晦退辨斥疏를 올려 이황(李滉)을 비판하고 스승인 조식(曺植)을 옹호하자, 성균관 유생 500명과 함께 정인홍을 탄핵하여 청금록 靑衿錄에서 삭제하게 했다. 1612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병조좌랑 등을 지냈으나 대북정권이 서인을 계속 제거하는 과정에서 1615년 파직당했다.

 

1623(인조 1) 인조반정 뒤 서인정권이 들어서자 관직에 복귀하여 정언·수찬·교리·이조좌랑을 지냈고, 다음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의 공주 피난길에 호종했다. 이때 이귀(李貴)가 반군과 싸워 패전하자, 그를 파직시킬 것을 상소했다. 1627년 정묘호란 때는 대사간으로서 역시 강화로 인조를 호종했고, 그뒤 부제학·참찬·형조참판을 역임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자 협수사(協守使)로 성을 방어하면서 주전론(主戰論)을 폈다. 다음해 서울로 돌아온 뒤 주전파들이 물러나자 같이 사직했는데, 곧 다시 복귀하여 대사헌·동지경연사·도승지·원손보양관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송교유고가 있으며,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이다.



  • 간행일 : 1996년 12월 25일
  • 발행인 : (사)청권사 이사장 이수홍
  • 발행처 : 사단법인 청권사 [비매품]
  • 인쇄처 : 오정인쇄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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