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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국 전 헌법재판소장님, 본사 고문에 추대

강국 전 헌법재판소장님, 본사 고문에 추대

갑재 이사장 취임식에서 축사하는 강국 고문

청권사 이사회에서 강국 전 헌법재판소장님이 고문에 추대되었다. 고문님은 재직 시 국가의 중책을 맡을 때마다 대군 사당에 들러 경건한 마음으로 고유 참배를 하는 등 평소 청권사에 남다른 애정과 소속감을 가져왔다. 2018년도 효령장학금 수여식 때는 축사자로서 효령장학생들에게 자긍심을 갖고 미래의 꿈을 설계할 것을 역설하였고, 최근에는 청권사의 중요한 법률적 현안에 대해서 풍부한 법률지식과 법조 경험을 활용하여 자문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등으로 청권사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고문님은 1967년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던 해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군법무관을 거쳐 1972년 판사로 임용된 후 서울민사지법 판사, 법원행정처 조사심의관,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법원도서관장, 서울고법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장 등 각급 법원에서 중요 직책을 두루 수행하였다. 1988년에는 헌법재판소법 제정 실무에도 참여하여 현재의 헌법재판소 출범에 법제도적 기반을 놓기도 하였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대법관으로 재직하였고, 더불어 법원행정처장(2001~2003)도 역임하였다. 2007년 1월 제4대 헌법재판소장에 취임하여 2013년 1월까지 6년간 중책을 맡은 후 임기를 마치고 변호사로서 활동 중이다.

고문님은 법관으로 있으면서 개인이나 예의범절 등에서는 보수적이지만, 소수자 배려, 환경, 인권 등 사회제도 개선에서는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소신 판결을 적지 않게 내놓았다.

또한 헌법재판소 재판관 구성의 다양성 확보를 위하여 재판관 9명 가운데 3명은 법관이나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 이외에 다양한 직역에서 들어오도록 함으로써 제도가 사회변화에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는 점도 피력하였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는 중도적이고 불편부당한 입장을 줄곧 견지하면서 당파성이나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법조 신념에 따라 정당해산심판과 탄핵 사건 등 국내의 굵직한 사건들 속에서 균형 잡힌 시각과 전문성 있는 판결로 기본권 수호와 국민통합에 크게 기여하였다.

2013년 1월, 헌법재판소장 퇴임을 앞두고 “현직에서 물러나면 사회에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약속을 공언한 바 있다. 퇴임 후 매주 2차례씩 법률구조공단에 나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상담예약자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법률 상담을 진행함으로써 법조인으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모범을 보이며 약속을 지키는 공직자의 미담을 몸소 실천하였다.

또한 버클리대, 하버드대 로스쿨 강연에서는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출범한 지 30여년이 된 만큼 이제는 미국과 독일의 헌법재판 기준과 법리를 넘어서 아시아적 가치와 문화에 맞는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점도 역설하였다.

강국 고문.png

그리고 후학들을 위해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Law School) 등 여러 대학의 요청에 따라 석좌교수로 강의하였고,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등 다수의 대학에서 미래 법조인을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특별강연을 갖기도 하였다.

통일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통일시대의 헌법과 헌법재판소 연구소'를 개설하여 통일한국의 주춧돌을 만드는 작업에 매진하는 한편, 2017년 7월에는 정세균 국회의장 초청으로 국회에서 열린 국가원로개헌대토론회에도 참석하여 전문성 있는 견해를 제시하는 등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하여 지혜로운 해결책과 대안을 제시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법무법인 클라스’에서 고문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헌법재판의 새로운 지평”, 『박영사』, 2013」, 「“헌법합치적 법률해석 : 서독에서의 이론과 실제”, 『박영사』, 2012」, 「“특별법 연구”, 『박영사』, 2006」 등이 있다.

효령대군 18대손으로, 계대는 서원군댁 춘성정 종회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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