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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거짓말 김수환 추기경

  • 이여성
  • 2020-07-30 10:26:12
  • 조회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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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거짓말 김수환 추기경 

     

    
성자의 거짓말

 

김수환 추기경

 

추기경이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것은 사실이지만 개천에서 용 난 것은 아니다.

 

그는 뼈대 있는 집안의 후손이었다. 할아버지는 1868년 무진박해(戊辰迫害) 때 순교한 김보현이다.

 

추기경은 옹기장사를 하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호를 '옹기'라고 했다.

 

추기경 뒤에는 여덟 명의 아이들을 고생을 하며 키웠고, 순교자의 후예답게 아들 둘을 천주교회 성직자로 만든 어머니가 있었다.

 

추기경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가 별세를 했다.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할 짐은, 어머니 혼자서 걸머져야만 했다.

 

서울에 있는 동성상업학교에 다닐 때, 일왕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쓰라는 학교 당국의 지시가 있었다.

 

추기경은 "나는 황국 신민이 아니다."하며 글 쓰는 것을 거부하자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는 교장의 설득에도 듣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 당시 교장은 이승만 시절의 국무총리 장 면 박사다.


김수환 추기경은 일본 동경에 있는 상지(上智)대학 철학과에 입학했으나

 

학병으로 징집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아예 일본 육군 간부후보생에 지원하였다. 요즘은 친일파라는 딱지가 붙을 지도 모른다.

 

일본인에 대해 불온한 발언을 했다는 불경선인으로 군에서 강제 전역을 당했다.

 

해방을 맞아 귀국한 그는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1951년 대구 계산 성당에서 서품을 받고 성직자의 삶을 시작했다.

 

당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었다.

 

성신대학 학생시절에 부산 범일동에 있는 형 김동환 신부가 시무하는 성당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 성당 유치원에 근무하던 젊은 여성으로부터 뜻밖의 청혼을 받았다는데. 다음 이야기는 설만 난무할 뿐 알려진바 없다.

 

가톨릭대학이 주최한 열린음악회에서 사회자가 추기경에게 노래를 한 곡 부탁하자.

 

'등대지기'를 열창하자 청중이 앵콜을 해서, 뜬금없이 김수희의 '애모'를 불렀다. 성직자가 부르기에는 좀 거시기한 노래다.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중략)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여!

 

"당신은 나의 남자""당신은 나의 친구"라고 고쳐 불러. 추기경다운 재치를 보였다.

 

추기경님은 여러 종류의 말을 다 잘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떤 말을 가장 잘하십니까?"

 

추기경은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말은

 

거짓말이지!

 

! !

 

파란 하늘을 날아가는 하얀 비둘기가 검은 새라고?


신의 존재도?

 

참회와 통성기도도?

 

눈물은 악어 눈물이었던가?

 

지금까지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추기경의 거짓말이란 말도 거짓말일 것이다. 이래야 이해가 된다. 한편으로는 거짓말이 사실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직자의 말은 이다. 누구나 성직자의 말은 의심을 않고 그냥 믿는다.

 

추기경은 명동성당 앞 노점상에 가끔 걸음을 멈추고 묵주를 사셨다.

 

추기경의 인생덕목(德目)'노점상'이란 항목이 있었다.

 

남루한 노인의 운영하는 작고 초라한 가게를 가라. 물건을 살 때는 고마운 마음으로 돈을 내밀어라.

 

노점상에게서 물건 살 때는 값을 깎지 마라. 그냥 주면 게으름을 키우지만 부르는 값을 주면 희망을 선물한 것이다.


덥석 물건부터 집지 말고, 시장 안을 둘러봐라. 한 번 산 물건은 헌 것이 되니 물릴 수 없다.

 

내가 가지려 하는 것 중에 좋은 것을 남에게 주어라.

 

짐이 무거워 불편하다면 욕심이 과한 것이다. 준비가 부족한 사람은 어려운 세월을 보낸다.

 

명동성당에서 군사독재를 반대하는 젊은 학도들이 농성을 하는데.

 

경찰이 농성에 가담한 학생들을 모두 검거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추기경인 나를 먼저 끌고 가라! 그 다음에 신부와 수녀, 그런 뒤에야 학생들을 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말년에 오랜 투병생활을 했지만. 고통스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두 눈은 맑고 총명한 빛이 보였다. 그리고 웃으시며 육체의 아픔을 이겨냈다.

 

20092월 어느 추운 날 그는 하늘나라로 조용히 떠났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남긴 말은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나는 바보인가 봅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점이 너무 많습니다.

 

밝은 태양과 찬란한 하늘은 물론 밤하늘의 별들도 보지 못하고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와 관용, 포용과 동화, 자기낮춤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추기경 김수환

 

양심적인 도둑

 

한 사내가 성당에 들려 고해 성사를 했습니다.

 

신부님 제가 남의 닭을 훔쳤습니다.”

 

! 그러면 안 되지!

 

신부님! 훔친 물건이라도 연봇돈 대신 받아 주시겠습니까?”

 

안 됩니다 닭은 주인에게 돌려드려야지요.

 

그분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에게 감사하고 그걸 가지십시오.

 

그러자 사내는 안도한 듯이 아 그렇군요! 그럼 이만

 

사내는 신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성당을 나왔습니다.

 

그날 저녁 신부는 자기 집 닭장에서 닭 다섯 마리가 없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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