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堂같은 이야기]아빠의 청춘

  • 이기문
  • 2019-06-17 11:49:06
  • 조회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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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로 시작되는 교과서로 공부한 시골 출신들에겐'아빠'라는 단어는 없었다.요즈음 처럼 아빠가 아버지 대용으로도 사용하는 것을 몰랐지만,나중에도 아빠는 서울 사는 세련된 여자 애들이 어리광 부리며 쓰는 단어인지만 알았다.그리고 나도 세련되게'아빠'라고 불러보고 싶었겠지만 철 덜든 여자 애들 같아 계면쩍어 차마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들에게 이제 너도 장가들 나이니 아버지로 불으라고 윽박지르지만 아직은 안 되는 모양이다.장가를 가면 며느리에게나 아버님소리를 들을 것 같다만,언젠가는 아빠가 아버지를 거쳐 아버님이 되고선친’(先親)으로 불릴 날이 올 것이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아버지는 외로울 때가 많다.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버지에겐 단 한번도 스스로 말하려 하지 않는다.세월이 흘러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기에 아들의 대학 생활을 통해서 젊은 시절의 추억도 한번쯤은 생각하고 싶은데'고시공부'하라는 아버지의 고리타분한 언질을 실천하느라 더욱 아버지와의 대화가 없어지는 느낌이다.

하긴 아버지는 언제나"시험 잘 봤냐,군대는 어찌 할 거냐,졸업 전까지 고시 패스해야 한다..."등등 하드웨어적 말만 하니 쏘프트 웨어적 시시콜콜한 대화가 나올 리 없다.그래도 가끔은아버지로서 해준 것도 별로 없는데....”라는 생각에 새벽에 화장실 가다가 불 켜진 아들 방에 들어가 등을 토닥거림으로 사랑을 표현해 본다.

이 땅의 아버지들은 다 같을 것이다.학군 좋다는 강남에 집 마련하고자 등골이 휘어지고 정신이 몽롱하도록 일에 묻혀 살았더니,손 한번 잡아 볼 새도 없이 대학으로,일터로,가정을 꾸려 떠난 후 폭탄 맞은 것처럼 큰 구멍이 파인 가슴에 외로움과 허전함을 느낄 것이다.

결혼 후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남편 뒷바라지,자녀 양육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던 가정주부가 어느 날 문득 남편과 자식들이 모두 자신의 품안 에서 떠나버려 애정의 보금자리라고 여겼던 가정이 빈 둥우리만 남았음을 깨닫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을 품는 현상인"공소증후군(空巢症候群empty nest syndrome)"이 여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둥지가 비었을 때 남자들이 여자들보다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더 큰 고통을 겪는다는 연구결과를 어디서 본적이 있다.이 땅에 자식들은 대부분 아버지를 돈 버는 기계로 생각한다.아버지 스스로도 그렇게 인정한다.일 기계가 되어 뼈 빠지게 자식을 다 키워놓을 때쯤이면 인생의 전성기를 지나 몸도 마음도 약해져 자식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만,이미 장성한 자식들은 아버지와 함께 하기는커녕 아버지에서 더 멀리 달아남으로써 더욱 공허감과 외로움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그 마음을 헤아려줄 것 같은 아내들은 내 청춘 돌려 달라며 곰국 한 솥 끓여놓기 무섭게 친구들과 어울려 교외로 달려 나가 고즈넉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명퇴 퇴직금 이래야 아들.딸 대학 등록금이나 될까 말까하기에 뭐라도 해볼까 하고 나가,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술 팔아달라고 웃음 흘리는 허름한 카페 에 들려 늙은 마담의 걸쭉한 야한 농담과 함께 알딸딸하게 술한잔 걸친 후 석양을 뒤로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다.

한적한 골목에서 맥주마신 소변을 보고자 바지춤을 내리다'노상 방뇨를 하는 중년 남자의 조각상이 어린애들이 하도 만져 안보이도록 거시기를 철사 줄로 꽁꽁 묶어 퇴출 되었다는 기사'가 생각나 얼른 바지 지퍼를 다시 올린다.노상 방뇨하는 꼴을 혹 자식들이 보면 집에서 퇴출될까 걱정을 하면서....

흥얼 흥얼~

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고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부라보 부라보 아빠의 인생~이라고 노래를 불러 보지만 심파극이 따로 없다.이것이 이 땅의 아버지들이다.

/虛堂의 허당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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