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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형상(李衡祥) [병와공(甁窩公)]  청권사 2013-05-02 5213
     
  [1653(효종4)~1733(영조9)]

자는 중옥(仲玉), 호는 병와(甁窩) 또는 순옹(順翁), 대군의 10대손이며 밀산부수의 7대손이고 증 호조참판 주하(柱廈)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증 정부인 파평윤씨로 진사 세구(世耉)의 딸이다. 배위는 정부인 은진송씨로 통덕랑 지규(之奎)의 딸이다.
문신이며 실학자로 1677년(숙종3) 사마시를 거쳐 1680년(숙종6)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호조정랑을 지내다가 덕유산의 도적을 토평하고자 문ㆍ무를 겸비한 인물로 천거되어 금산군수로 부임,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 성주ㆍ청주ㆍ동래ㆍ양주ㆍ경주부윤을 지내고 1703년(숙종29) 제주목사가 되어 3읍(邑)의 향교를 수리하고 덕망 높은 선비를 뽑아 교학(敎學)을 담당케 했으며, 고(高)ㆍ부(夫)ㆍ양(良:梁)씨의 삼성사(三姓祠)를 건립하는 한편 미풍양속을 장려하여 송덕비(頌德碑:삼성사 경내에 현존)가 세워졌다. 그 후 장례원 판결사에 2번 제수되고 1727년(영조3) 호조참의에 임명되는 등 여러 벼슬이 내렸으나 모두 사퇴하고 영천에 호연정(浩然亭)을 세워 학문에 열중하는 한편 후학을 양성하였다. 1686~88년(숙종12~14) 이규령 경상감사 때 대군종손 엄겸, 익수, 태수와 더불어 함창 공검호반에 사당을 짓고 위전을 마련했으며 1710년 중건하고 1717년(숙종43) 원파기를 지었다. 1724년(경종4) 대군 묘지를 확정해 1726년(영조2) 묘광에 묻게 하는 등 종사에 공로가 지대하다.
1728년(영조4) 이인좌(李麟佐)가 난을 일으키자 영조대왕의 밀지(密旨)로 경상도 호소사가 되었으나 무고(誣告)로 한 때 투옥되기도 하였다. 이르는 고을마다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11좌(座)나 세워졌는데 그 중 동래는 유비(鍮碑)이다. 1796년(정조20) 별세 60년만에 청백리에 천거되고 영천의 성남서원과 제주의 귤림사(橘林祠:사액사당)와 영혜사(永惠祠)에 배향되었다.
병와공이 지은 호연정(浩然亭:현 경북 영천시 성내동 금호강 상류에 위치)은 지금까지 남아 있고, 1986년 호연정 경내에 유고각(遺稿閣)이 건립되었다. 1731년(영조7) 박상기(薄相記)와 함께 그린 자화상인 영정이 있다. <병와집(甁窩集)>ㆍ<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등 유저로 총 86종 254책 6첩이 전하며, 여러 유품들이 남아 있다.
공의 유고는 1979년 2월 8일 정부에서 보물 제652호로 지정하였다. 한편 정신문화연구원에서는 이를 영인으로 완간하였고 1979년 11월에 사단법인 청권사가 간행한 <병와연보>가 있다.
묘소는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우산동 뒤 묘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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