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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 목 글 쓴 이 파 일 등 록 일 조 회 수
24      이철(李徹) 물거군(勿巨君)  청권사 2006-05-02 5756
     
  [1436∼1467]

  휘는 철(徹), 대군의 손자로 보성군의 5남이다. 어머니는 청풍군부인 합천이씨로 광록시 소경 무창(茂昌)의 딸이고, 배위는 재양현부인(載陽縣夫人) 남양홍씨로 강녕군(江寧君) 장간공(章簡公) 원주(元周)의 딸이다.

 공은 처음에는 은산부령(銀山副令)에 제수되었다가 1460년(세조6) 6월 세조대왕의 아종(兒宗 : 궁궐에서 매일 두 사람씩 교대하여 입직(入直)하는 사람으로 발탁되었다. 2년 후인 1462년(세조8) 은산령(銀山令)을 거쳐 다음 해 은산부정(銀山副正)으로 올랐다. 1464년(세조10)에는 거제정(巨濟正)에 오르면서 풍양(豊壤)에서의 강무(講武)에서는 잡류장(雜類將) 겸 대장에 임명되어 연습을 지휘하였고 1465년(세조11)에는 종2품 정의대부에 승자되면서 `물거윤(勿巨尹)'으로 작호가 개정되었다. 1466년(세조12)에 세조대왕이 중궁을 대동하고 강원도 고성 탕정(湯井)과 상원사에 거둥할 때 치중장(輜重將)에 임명되어 어가를 따라 호종하는 등, 세조대왕의 아종으로 궁중에 머물면서 경호업무를 담당하다가 1467년(세조13) 2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공은 진법에 밝고 장기와 바둑을 잘 두었으며 젊어서 기병(奇兵)과 정병(正兵)을 도모하는 것에 능하여 세조대왕의 눈에 들어 급기야는 상정소(詳定所)의 책임자인 아종에 뽑히는 등, 세조대왕의 사랑을 받게 되어 항상 궁중에 거처하였다. 공이 작고하자 세조대왕이 매우 슬퍼하며 공이 소생하기를 바라고 즉시 염빈(殮殯)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고 사관이 기록하고 있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용암리(용골) 해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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