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화면  청권소식  이달의 인물
   
 
 
 
 
번호 제 목 글 쓴 이 파 일 등 록 일 조 회 수
10      이돈우(李敦宇) [문정공(文貞公)]  청권사 2005-04-06 4344
     
  [1801(순조1)~1884(고종21)]

  초휘는 돈영(敦榮), 자는 윤공(允恭) 또는 범야(凡若), 호는 신게(莘憩), 시호는 문정(文貞). 대군의 15대손이며 장제부정의 12대손으로 증 영의정 상두(相斗)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증 정경부인 대구서씨로 인수(寅修)의 딸이다. 배위는 정경부인 동래정씨로 익찬 동연(東宴)의 딸이다. 증 영의정 상형(相衡)에게 입양되었다.
1827년(순조27) 증광 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홍문관 제학, 1831년(순조31) 도청(都廳), 1836년(헌종2) 이조참의가 되고 1837년(헌종3)에는 집의, 1840년(헌종6) 이조참판에 오르고 이듬해 전라도 관찰사로 나아가 치적을 쌓았다. 1843년(헌종9) 이조참판 역임하고 1845년(헌종11)에는 대사헌이 되었다. 그 뒤 형조판서ㆍ대사헌ㆍ한성부판윤 등의 관직을 차례로 역임하였으며 1849년(헌종15) 대사헌, 1853년(철종4) 공조판서ㆍ판의금부사를 거쳐 1855년(철종6) 예조판서ㆍ병조판서를 지냈다. 1856년 광주부유수를 거쳐 1857년(철종8)에는 다시 판의금부사, 1858년(철종9) 이조판서가 되고 1860년(철종11) 형조판서ㆍ공조판서를 역임한 뒤 다시 형조판서, 1861년(철종12)에 다시 판의금부사를 지내고 경상도 관찰사로 민란 수습에 전력했다. 1862년 또 다시 판의금부사, 1863년(철종14) 국장도감의 제조로 애책문(哀冊文) 제술관을 맡았고, 1864년(고종1) 좌참찬ㆍ판의금부사ㆍ호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실록찬수당상으로 <철종실록>의 편찬에 참여 하였다.
1865년(고종2) 호조판서ㆍ부묘도감제조를 거쳐 1866년(고종3)에 다시 제조ㆍ호조판서를 지내고 그 뒤 1874년(고종11)에는 원자보양관으로 세자를 보필하였다. 이듬해에는 좌찬성으로 전문서사관(篆文書寫官)을 겸임한 뒤 봉조하가 되었다. 공은 일생을 관직에서 보냈지만 항상 청백한 것을 좋아하여 연꽃을 사랑한다는 ‘연설보(蓮說補)’를 지어 자신의 뜻을 설파했다. 또 대군의 사적(事蹟)인 행장ㆍ유사ㆍ시 등과 덕행을 찬미한 역대 제왕의 연설(蓮說)ㆍ치제문ㆍ조야 명현의 명송(銘頌) 등을 두루 조사하여 1844년 청권집유(淸權輯遺)를 편찬하여 대군의 사적을 후세에 전수할 수 있게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고종태황제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자지(磁誌)가 있고 유고로 갑고(甲藁) 6책, 예종지장(睿宗誌狀) 1책, 삼외록(三猥錄) 3권 1책, 완산지장(完山誌狀) 6권 3책(규장각ㆍ국립중앙도서관ㆍ장서각 소장), 집성선승(集成先乘) 3권 3책(중앙도서관 소장), 청권집유(淸權輯遺) 2권 2책(청권사ㆍ규장각ㆍ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동어연보(桐漁年譜) 1책, 가섭동유록(迦葉同遊錄) 등 많은 저술을 하였다.

묘소는 충북 음성군 금왕읍 오선리 별산당 간좌이다.
 
 
  이전글 다음글